트랜스젠더 여성의 험난하고 신랄한 병역판정검사 과정을 그린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2020~21년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 등을 받았던 변성빈 감독, 배우 해준이 <공작새>로 다시 뭉쳤다. 왁킹댄서로 치열하게 사는 신명(해준)은 군 입대를 앞두고 목돈을 모아 성전환수술을 받으려 한다.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실상 연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 덕길(기주봉)의 유언을 수행한다. 그것은 바로 신명이 직접 농악 명인 덕길을 위한 추모굿을 올리는 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따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신명은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드러내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돌보게 된다. 이처럼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퀴어영화의 저변을 넓힐 <공작새>가 지난 10월23일 극장 개봉했다. <씨네21>이 변성빈 감독과 배우 해준을 만나 그들의 오랜 인연부터 <공작새>의 화려한 완성까지를 물었다. 그들은 감독과 배우로서, 그리고 오랜 동료로서 솔직하고 들뜬 대화를 들려줬다.
- 어떻게 서로 처음 만나게 됐나.
변성빈 군대에서 만났다. 언제지?
해 준 2016년이었을 거다.
변성빈 아냐 아냐. 내가 2015년에 임관했으니까… 근데 네가 15년에 군대에 있었나?
해 준 네, 겨울부터 있었으니 거의 2016년에 만났죠.
변성빈 아무튼. (웃음) 이렇게 병사하고 장교 사이로 만났다.
- 만난 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협업한 계기는.
해 준 군대에서 상급 부대 규모로 계속 올라가는 토너먼트 형식의 무대 경연이 있었다. 그때의 경연 열기가 엄청났는데 당시 감독님이 직접 우리 부대의 무대감독을 맡았고, 병사였던 나는 무대에 섰다. 그때 처음 내 춤을 봤을 거다. 20살 전부터 계속 댄서로 활동하다가 20살 무렵을 넘기며 본격적으로 큰 무대에 서면서 빛을 본 경력이 있었다.
변성빈 그때 해준이가 가진 댄서로서의 아우라와 매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받게 됐을 때 주인공을 해준이가 꼭 맡아주길 바랐다. 이 캐릭터는 배우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한명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캐릭터는 싱어송라이터였는데 해준이에게 맞춰 직업을 댄서로 바꾸기도 했다.
- <공작새>도 비슷한 경위로 만들어진 건가.
변성빈 아니다. <공작새>는 처음부터 해준이를 주인공으로 삼자는 고정값을 설정하고 시작한 작품이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함께했던 제작진과 진짜 의미 있는 장편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이야기에 맞춰서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획을 점차 발전시켰다.
- “진짜 의미 있는 장편”이란 어떤 뜻일까.
변성빈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10편이나 될까 싶다. 퀴어영화 자체도 나오기 어렵지만 트랜스젠더가 주연인 경우는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이 영화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접근성도 최대한 키우고 싶었다. 메시지나 주제도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엔터테이닝의 요소도 놓치지 않고 연출에 힘쓰려 했다. 그렇게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이 영화가 닿았을 때 많은 이를 설득할 수 있기를 바랐다.
- 어떤 맥락에서 관객을 설득하고 싶었나.
변성빈 <신의 딸은 춤을 춘다>가 영화제에서 상영될 무렵 한국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고 변희수 하사의 일과 숙명여대의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거부 사건이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반응을 보며 우리 사회가 타자를 수용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함을 직면했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공작새>가 2시간 동안 트랜스젠더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고 관객과 잘 만나게 해준다면, 영화가 사회 전반에 퍼트릴 수 있는 좋은 힘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 다른 연기 경력 없이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시작하고 <공작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일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해 준 <공작새>가 총 77개 신인데 내가 77개 신에 다 등장한다. 같이 연기한 선배님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 (웃음) 그만큼 <공작새>의 서사와 성격을 2시간 동안 오롯이 내가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진 않았다. 내가 전문적인 연기 트레이닝을 받은 배우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을 배운 사람이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엔 감독님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감독님을 믿고 작업해보기로 했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가 새로운 예술 영역에 도전했던 재밌는 계기였다면, <공작새>는 배우로서 내 인생의 큰 그림이 될 만큼 깊은 의미가 된 작품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춤
- <공작새>의 신명은 사회와 격리되기보다 타인들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향성을 택한 이유는.
변성빈 독립영화는 보통 관객에게 명확히 소구할 수 있는 특정 주제를 잡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난 ‘이 주제에만 몰두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고 싶진 않았다. 트랜스젠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며 느끼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려 했다. 집필 당시 내가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고, 이 용서의 의미가 <공작새>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트랜스젠더 인물이 공동체의 화합을 기리는 굿에 몸담았을 때, 자기를 부정하는 대상들을 향해 오히려 그들의 번영을 빌어줬을 때 나오는 용서의 힘이 정말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던 거다.
- 신명의 삶과 배우 본인의 삶을 어느 정도로 겹치고 떨어트려야 할지에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해 준 맞다. 감독님이 주신 여러 단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명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많이 고심했다. 이를테면 시나리오에 신명에게 주어진 10개의 감정선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한명의 인물로 합쳐야 할지 처음엔 많이 어려워했다. 그런데 결국 나의 기질과 신명의 성격을 전부 동일시하는 방식은 포기했다. 나 자신이 완전히 신명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신명이란 캐릭터의 에너지가 줄어들 것 같았다. 대신 나와 신명이 정말 영혼의 단짝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명이에게 직접 편지를 써본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의 감정에 다가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원래 생각했던 감정과 실제 신명을 연기할 때 터져나오는 감정이 확연히 달라질 때가 생겼다. 신기했다.
- 어떤 장면에서 감정의 차이가 생겼나.
해 준 명이가 고향에서 한번 아픔을 겪은 후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정사를 전부 알게 되는 대목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허탈함이나 당황에 가까운 감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연기하게 되니 계속 울게 됐다. 촬영 첫날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다.
변성빈 카메라가 찍고 있는지도 모르고 해준이가 엄청나게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이게 진짜구나’라고 단번에 느꼈다. 시나리오와 좀 다를지라도 해준이가 만든 명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바로 오케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해 준 육체는 해준인데 영혼에 명이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명이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에선 대본 리딩 때부터 쌓아왔던 명이의 감정을 한번에 쏟아내고 개운해하기도 했다. 장례식장 촬영이 2회차였다. 그러니 1회차 땐 펑펑 울고, 2회차 땐 고모부에게 뺨 맞고 실컷 화내고. (웃음) 시작부터 ‘어? 연기 좀 재밌네?’라는 마음을 가지고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 영화의 제목처럼 공작새의 이미지가 반복하여 등장하는 이유는.
변성빈 굿에서 새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다. 하늘의 덕길과 땅의 명이를 이어주는 새의 존재를 영화의 중심 이미지로 가져가고 싶었다. 새 중에서도 공작새를 택한 이유는 공작새의 깃털 문양, 눈 모양 때문이다. <공작새>엔 눈이란 오브제를 무척 중요하게 다룬다. 서울의 명이 집에도 눈에 대한 미술이 많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주위의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들과 직접 눈을 마주치는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해 준 시각 요소 중 명이의 의상, 메이크업 등도 무척 중요하게 다뤄졌다. 기존의 다른 매체에서 흔히 보이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란 티가 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이크업 방식이나 의상 선택에 내가 평소에 하고 입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섞어냈다. 극 중에 나오는 공작새 무늬가 있는 한복 치마도 공교롭게 내가 갖고 있던 옷이다.
- 왁킹과 굿을 섞는 명이의 시각적 퍼포먼스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해 준 정말 죽을 뻔했다. (웃음) 왁킹이야 원래 하던 거니까 연기하다가 춤을 춰야 하면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소고춤은 워낙 다른 전문 분야이니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들에게 거의 반년 넘게 고된 훈련을 받으며 터득했다.
- 차기작 등 차후 계획은 어떤가.
변성빈 여러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내가 무언가를 늘 찾는 사람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존재만으로 부정당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계속 쓰고 있다. 상업영화를 하게 되더라도 내가 원래 추구하던 이런 면모들을 놓지 않고 은유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해 준 난 사실 뭔가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은 아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다. (웃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