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 가다> 출연자 시라토리 겐지 감독 미요시 다이스케, 가와우치 아리오

3377TV정보人气:718시간:2024-11-22

시각장애인, 그것도 전맹인 사람도 예술을 ‘볼 수’ 있다. 전맹 미술 관람자 시라토리 겐지는 비장애인과 미술관을 방문해 작품에 관한 시각적 설명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한다. 그렇게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작품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 가다>는 시라토리 겐지가 일본 각지의 미술관을 다니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로 올해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미요시 다이스케, 시라토리 겐지, 가와우치 아리오(왼쪽부터).

- 이번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가와우치 아리오 2019년 시라토리 겐지와 처음 만났다. 당시 미술관에서 일하던 사토 마이코라는 지인이 시라토리 겐지와 함께 미술관에 가면 정말 재밌다고 해서 다양한 미술관을 같이 다니게 됐고 그 내용을 책으로 쓰게 됐다. 70~80%가량 썼을 무렵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오랫동안 미술관에 가지 못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꿈의 집’(100년 된 집을 개조한 숙박 시설이자 예술 작품)을 방문하며 오랜만에 다시 미술 작품을 보게 됐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영상으로 남기면 어떨까 얘기가 나왔다. 마침 시라토리씨의 인생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그를 담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대학 동기인 미요시 다이스케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5~10분가량의 짧은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10시간 이상 촬영하게 됐다. 마침 배리어프리영화를 배급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생기면서 오리지널 작품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그곳에 응모해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이 영화를 완성했다.

미요시 다이스케 원래 내가 감독, 아리오가 구성을 담당하기로 했었는데 영화제작 과정에서 아리오의 역할이 점점 많아지게 됐다. 그래서 아리오에게 감독을 하는 게 어떠냐고 내가 먼저 제안했고 공동 감독의 형태에 이르게 됐다. 원래 논픽션 작가인 아리오는 말을 정리하는 구성을 많이 맡았고, 나는 촬영이나 편집 등 영상적인 부분을 담당했다.

시라토리 겐지 가와우치씨와는 친구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그가 찍는 거라면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 영화를 제안했을 때도 그냥 흐름에 맡겼다.

- 일본에서는 어떤 형식으로 상영됐나.

미요시 다이스케 맨 처음 영화를 공개한 곳이 배리어프리영화 전문 극장이었다. 2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관이었지만 평상시 배리어프리영화를 즐기는 장애인들이 영화를 많이 보러 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첫 상영을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일본에는 유디캐스트(UDCast)라는 시스템이 있다. 스마트폰에 미리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일본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더라도 음성 가이드를 들을 수 있다.

가와우치 아리오 귀가 들리지 않는 관객을 위해 일본어 자막이 함께 나올 수 있도록 극장에 요청드렸고 많은 곳에서 자막 상영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분도 귀가 들리지 않는 분도 모두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제목에도 두번 등장하는 ‘본다’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시라토리 겐지 스무살 무렵까지는 ‘본다’는 건 시각적으로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눈이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 그리고 공통점을 생각하다가 ‘시각’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됐다. 그 무렵부터 미술관을 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혼자 밖에 나가 거리를 걷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저항감이나 불안감은 없었다. 본다는 행위를 할 때 안구에 들어오는 빛의 정보 외에 뇌에서 처리하는 정보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각자의 지식이나 경험, 성격이 반영되는 것이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화를 통해 작품을 만나면서 세분 모두 예술 작품을 더 잘 감상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미요시 다이스케 시라토리씨와 함께 감상회에 가면 3~4명이 그룹을 만들어 한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각자 작품을 보는 시각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작품을 보는 눈도 넓어진다. 내가 다른 일로 혼자 미술관에 갈 때도 옆에 시라토리씨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에게 어떻게 이 작품을 설명해야 할지 디테일하게 관찰하면서 언어화하게 됐다.

가와우치 아리오 나라 요시모토의 작품을 함께 보러 간 적이 있다. 이전까지는 그리 흥미롭게 보지 않았던 작가다. 그런데 20~30분 동안 한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처음으로 그 작품의 매력을 알게 됐다.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이를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작품을 보다 보면 미술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 전시회 참 좋았지”보다는 “그 작품 무척 좋았지”라는 식으로, 내가 본 것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명확해진다.

시라토리 겐지 미술작품 감상 방식은 늘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정보를 모아서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려 했다면 현재는 점점 함께 보는 즐거움이 메인이 됐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는 시간이 즐겁다.

-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가 폭넓게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미요시 다이스케 나 역시 전맹인 사람이 어떻게 예술을 본다는 것일까 의구심과 편견을 갖고 있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근데 시라토리씨라는 사람 자체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고 촬영에 들어가니 내가 찍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를 보고 그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치관도 바뀐다.

가와우치 아리오 시라토리씨의 할머니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남들보다 몇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고, 맹학교 선생님들도 비장애인의 생활에 되도록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라고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영화에도 나온다. 시라토리씨는 여기에 의문을 가졌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신체를 갖고 있는 것뿐이다.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시라토리씨는 과거에는 마사지사로, 지금은 미술 관람자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더 해나가고 싶은 일이 있나.

시라토리 겐지 원래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새로 하고 싶은 것이 당장 떠오르지는 않는다.

가와우치 아리오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을 것 같아서 부연하자면(웃음), 사진가로서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제안을 받아 전시도 많이 하고 있다.

- 앞으로 극장이 어떻게 개선됐으면 하나.

미요시 다이스케 배리어프리영화를 함께 만든 스태프 중에는 눈이 잘 안 보이는 분도 있고 중도 장애인들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간에도 차이가 있고 필요로 하는 정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영화제작 단계부터 배리어프리판 상영을 기본으로 하고 만드는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아 한국에 왔지만 언젠가 배리어프리영화제라는 말 자체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가와우치 아리오 물리적인 배리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기가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 누구든 극장에 가고 싶을 때 가고 환영받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초 이 영화가 한국에서 극장개봉하는데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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