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손’ 생로병사의 시간 사람들 (오정민 감독)

3377TV정보人气:840시간:2024-09-17

장손

추석 명절이다. 추석은 이제 꽉 막힌 고속도로, 해외여행 나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공항이 일상적인 풍광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향으로 향하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척들이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쌓였던 감정을 풀고, 돌아가신 조상들에 대해 한 번 쯤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때마침 그런 시기에, 정서에 어울리는 영화가 한편 개봉했다. 작년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관객의 호평을 받고, 상도 많이 탄 오정민 감독의 <장손>이란 영화이다. 국문학과(성균관대)를 나와 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오정민 감독은 몇 편의 인상적인 단편을 만들었고 <장손>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장손’은 그런 감독의 궤적에 어울리는 역작이다.

‘경상도’의 시골마을. 푸른 산이 보이고 마을 어귀엔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커다란 기와집에는 대를 이어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김승필씨 집안이 자리하고 있다. 제삿날을 맞아 일가친척들이 모여든다. 거실에서는 엄마와 고모, 딸이 땀을 흘리며 ‘찌짐’(전)을 부치고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올 ‘장손’ 성진(강승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명절 앞둔 ‘큰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여자들은 제사상 준비로 여념 없고, 남자는 안방에서 화투치며 소일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왜, 우리 집안은 자정에 제사를 지내냐?”고 할아버지에게 제사 좀 당기자며 투덜댄다. 영화 <장손>에서는 제사 지내는 평범한 모습을 통해 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시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걱정이고, 다리를 저는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마시며 집안의 어른인 척 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고민이 있다. 그렇게 제사가 끝나면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얼마 뒤 다시 모인다. 이번엔 할머니가 장례식. 그리고, 할머니가 관리하던 통장의 향방과 관련하여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이제 할아버지 세대부터 쌓였던 묵은 감정들이 각자의 기억과 회한으로 분출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돌아눕고, 아버지는 과음하고, 고모는 울부짖고, 성진은 제대로 곡(哭)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장손>은 한국의 제사, 한국의 장례를 통해 가족과 친척과 만남을 성사시키고, 내리사랑과 유산분배를 둘러싼 분열의 과정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다행히 <장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인간적이고, 전통적이며,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산이 너무 많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다.

장손

‘장손’ 성진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가족과 친척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할아버지의 과거와 할머니의 사랑을 알 것이다. 대단한 종가집의 엄청난 무게감은 아닐지라도,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 제례의식을 어떻게 유지하고, 참여하게 될지는 예상가능하다.

이제는 ‘홍동육서 조율이시’ 정도만 해도 전통적인 시대가 되었다. “고인은 생전, 스타벅스 라떼를 좋아했었는데..”하면 무엇을 올려야할지는 답이 정해졌는지 모른다.

오정민 감독은 ‘빨갱이 타령’을 하는 할아버지와 ‘민주화 투사의 낭만’을 간직한 아버지 세대를 거쳐 ‘연예계에 발을 디딘’ 아들 세대의 만남과 교감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사회구조의 변화의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두부공장이 누구 손에 맡겨질지, 고모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그리고 성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성진의 선택이 10년 뒤, 20년 뒤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격변 중이니 말이다. 대신, 그 마을의 한 복판에 우뚝 선 커다란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봄이 이어져도 그 사람들의 생노병사, 흥망성쇠를 꾸준히 지켜볼 것이다. 온 가족이 아니라, 삼대가 같이 봐도 좋은 작품이다.

▶장손 (House of the Seasons) ▶감독/각본:오정민 ▶PD:정조은, 장지원 ▶출연: 강승호(장손 성진 역), 우상전(할아버지 승필 역), 손숙(할머니 말녀 역), 차미경(큰고모 혜숙 역), 오만석(아버지 태근 역), 안민영(어머니 수희 역), 정재은(막내고모 옥자 역), 서현철(막내고모부 동우 역), 김시은(누나 미화 역),강태우(매형 재호 역) ▶제작사:영화사 대명 ▶배급: ㈜인디스토리 ▶개봉:2024년9월11일/12세관람가/121분 ▶28회 부산국제영화제 KBS 독립영화상/오로라미디어상/CGK 촬영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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