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빚가리’ 고달픈 인생, 달콤한 순간 (고봉수 감독)

3377TV정보人气:802시간:2024-10-17

빚가리

‘독립영화’라는 것을 자본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독창적인 독립영화인은 단연 홍상수 감독과 함께 이 사람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이 해외영화제에서 충분히 상찬(賞讚)을 받을 동안 이 사람의 작품은 그다지 조명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항상 기다리고, 기대하고, 반기는 영화팬이 있다. 바로 고봉수 감독이다. 영어 이니셜은 ‘K.B.S.’이다. 그의 신작 <빚가리>가 16일 개봉한다. 눈물겨운 작품이다.

고봉수 감독의 <델타보이즈>(2016), <튼튼이의 모험>(2017), <습도 다소 높음>(2021) 같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놀라게 될 것이다. “아니, 또 만들었다고?” 그렇다. 또 만들었다. 꿋꿋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화법으로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제목의 ‘빚가리’는 ‘빚을 갚는 일’을 의미하는 충청도 사투리란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배경은 ‘조치원’이다. 감독은 ‘독립영화/예술영화 전용관’조차 없는 조치원의 현실을 알리고자, 조치원(세종시) 주민들과 함께 이 영화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눈물겹다.

영화는 조치원에서 ‘제일슈퍼’를 운영하는 소시민 대복(고성완)의 지지리 궁상의 삶을 보여준다. ‘쿠팡’과 ‘코스트코’, 하다못해 ‘알리’가 있는 세상에 ‘제일슈퍼’의 경영상태는 극악이다. 집주인은 가게 세가 밀렸다고 닦달이다. 이혼한 아내에게 위자료도 지급 못하는 상태이다. 변호사가 와서 “그건 줘야한다!”고 말하지만 줄 돈이 없다. 아들 놈(홍민)은 ‘돌뼈나무’라는 괴상망측한 자연주의 단체에 빠져서 황토색 개량한복을 입고는 들로 산으로 쫓아다니며 자분지족이다. 제일슈퍼에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동네에서 정체불명의 무역업을 한다는 사장 원창뿐이다. 그곳 직원 하나가 노상 외상으로 담배를 사간 것이 장부에만 300만원이 넘는다. 공과금도, 위자료도, 외상값도, 어느 하나 제대로 융통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들놈도, 이웃사촌도, 모두가 제 마음 같지가 않다. 소시민 대복은 분노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담배 태우고, 술 마시고, “내가 말야~”큰 소리치는 것 밖에는 없을 듯하다. 조치원 슈퍼 주인의 미래는 어찌 될까.

빚가리

고봉수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의 순발력 넘치는 자발적 연기를 끌어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배우들은 상황의 연기를 절묘하게(처절하게) 펼친다. 대사 사이에 멈칫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지만 배우들은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대복,홍민,원창 역 말고는 전부 일반인이란다!) 대복은 극한에 처한 소상공인의 처지를, 원창은 황당한 직원의 행동에 대해 어찌할 줄 모르면서 다들 분노지수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세상의 고달픔을 멀리하려는 듯 아들의 행동거지는 참으로 난감할 뿐이다. 고봉수 감독의 초저예산 독립영화 <빚가리>는 아주 소박한 예산범위에서 인생의 버거움을, 그 무게감을 충분히 전한다.

고봉수 감독 영화의 미덕은 당연히 배우들의 열연이다. 주인공 고성완은 감독의 작은 아버지이다. 서울에서 시내버스 기사란다. 기꺼이 조카를 위해 연기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또한 감동적이다. 이번엔 전작에서 늘상 보았던 고봉수 감독의 사단이 없다. 대신, 놀라운 신인(?)이 등장한다. 대복의 딸, 홍민의 누나로 등장하는 시혜지이다. 이 영화 제작을 성사시킨 조치원의 ‘시네마다방’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이다. 아마, 동생과 술 마시며 만담하듯이 리얼한 생활연기를 펼치는 장면을 본다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저예산독립영화답게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OST는 없다. 대신 <더 에이트 쇼>의 박정민의 코피리 연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선율을 만끽하게 된다. (그리고, ‘제리코 제리코’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영화는 소시민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답답해하고, 발버둥치고, 울고, 웃고 하다가 현실에 주저앉고, 다시 서로 격하게 껴안으며 이해하는 아름다운 훈풍의 사회드라마이다. 하지만 마지막 흑백의 영상에서, 사다리를 쳐다보는 장면은 어쩌면 올라가지 못하는 저 세상에 대한 좌절의 상징이 아닐까. 고봉수 감독의 다음 번 작품도 격하게 기다려진다.

▶빚가리 ▶감독/각본:고봉수 ▶주연: 고성완(대복),문용일(아들 홍민),승형배(사장 원창)
장동우(돌뼈나무 대표), 시혜지(딸 수민), 김요섭(원창의 수하), 주성빈, 이정주 ▶개봉:2024년10월16일/75분/12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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