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분야 지원 예산 829억 편성… 전년 대비 12.5% 증가
한국 영화사에 2003년은 기념비적 해다.
4월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고, 11월에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관객들과 만났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의 공통점은 또 있다. 봉 감독과 박 감독이 각각 이 영화들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랐다는 점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중예산' 영화라는 점이다.
중예산 영화는 대체로 50억원 이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지칭한다. 인기 배우의 비싼 몸값, 블록버스터급의 대규모 세트나 특수효과 등으로 중무장한 대형상업영화나 독특한 설정으로 승부를 보는 독립예술영화 사이의 중간규모 영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 처음으로 중예산 영화 지원예산 100억원을 편성했다. 또 기획개발지원 예산도 10억원을 늘린 26억원을 투입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위기를 겪고 있는 영화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감독, 제작사, 배급사, 투자사, 극장 등 영화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 영화 분야 예산지원 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영화 지원 방침을 밝혔다.
토론회를 주재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영화는 늘 어렵고, 부족하고, 배고프고 위기라고 하지만 가능하면 원활하게 현장을 돌아가게 하자는 게 부처의 원칙이고 목표"라며 "최대 연간 140편의 영화를 찍었던 해도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고 영화산업을 진단했다. 아울러 "장관으로 취임한 뒤 지속적으로 (지원예산) 책임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에게 심사를 의뢰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체계를 바꿔, 심사의 결과를 책임지고, 한 번 결정했으면 성공할 수 있게 끝까지 뒷받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유 장관은 구체적으로 서류심사를 데모영상 첨부 심사 등으로 바꾸고, 인큐베이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원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문체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영화분야 지원예산으로 829억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12.5% 증가한 수치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이 중예산 영화 지원예산이다. 문체부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등과 같은 참신한 중예산 영화를 활성화해 영화산업 성장 사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다. 코로나19 이후 자본경색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대형상업영화에 투자가 쏠려 중예산 영화 제작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펀드도 추진한다.
영화 '경과의 피'의 이규만 감독은 토론회애서 "흥행공식이 정해진 대형영화에 비해 중예산영화는 창의성을 살려 도전적 시도를 할 수 있다"며 "감독들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영화 '파일럿'을 제작한 무비락의 김재중 대표는 "내년·후년에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가 부족하다. 극장에 콘텐츠가 없으니 관객이 유입안되는 악순환"이라며 "실패해도 제작하는 영화 편수가 보장돼야 그 중 성공하는 영화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사 KC벤처스의 이정석 전무는 "최근 영화 시나리오의 양과 질이 저하되고 있음을 느낀다. 기획개발 단계부터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영화업계 토론회'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내년도 문체부 영화지원 예산과 관련해 토론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