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활명수'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며, 재밌고, 가볍고, 보기에 부담이 없다. 하지만 ‘코미디’ 장르를 규정하는 순간부터 어려워진다. 뭔가 철학적이거나,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좋은 코미디란 그런 갭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보통 상황의 전복이나, 인식의 부조화를 노린다. 쉽게 이야기해서 “월남 스키부대가 전쟁에 간 이유는?” 같은 식이다. 여기 ‘아마존 활명수’에서 그런 아슬아슬하고도 무시무시한, 그러면서 원시적이며, 아방가르한 코미디를 펼친다. 즉, 이해하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아니면 시간낭비라든가.
■ 부시맨의 콜라병, 쿨러닝의 봅슬레이, 그리고 타가우리 양궁
전설의 영화 <부시맨>(1980)에서 하늘을 날던 경비행기 조종사가 빈 콜라병을 밖으로 던지고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이 그 빈병을 줍게 된다. 이게 신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세상의 끝’에 돌려주려고 길을 떠난다. 영화는 서구적, 문명화된 도시인에게 소동과 웃음을 전해주며 문화적 오해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 (웃지만 않는다면!)
헬리콥터를 타고 브라질 외곽의 신비로운 나라 볼레도르에 불시착한 한국인 조진봉은 ‘아마존의 전사’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조진봉은 전 양궁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이지만 지금은 구조조정 1순위에 내몰린 직장인/생활인/도시인이다. ‘볼레도르’의 금광개발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어떻게? 원주민을 5개월 속성훈련시키고,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출전시키고, 금메달을 따게 하여 볼레도르 당국의 환심을 사겠다는 것이다.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아마존 활명수'
무려 ‘디즈니영화’ 쿨러닝(93)에서는 열대국가 자메이카의 봅슬레이팀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남스키부대’의 열정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경멸과 무지, 열악한 상황에서 선수와 코치는 고군분투하며 얼음판 위를 달리는 것이다. 조진봉(류승룡)은 아마존 정글에서 사냥하던 세 명의 볼레도르 소수원주민 타가우리 전사를 서울로 데려온다. 먹는 것, 입는 것, 기타등등 ‘신토불이’한 상황에서 눈물겨운 특훈을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독립기념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특설양궁장에서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경기방식과 진행은 지난여름 열린 ‘파리올림픽 한국양궁 선수단’ 경기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아마존 활명수> 개발단계를 상상해 보면, 시놉시스나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건, 대박이야~”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올림픽에 맞춘다면, 방학기간에 개봉한다면, 협찬사가 적극 밀어준다면 흥행 금메달은 반드시 우리 목에 걸릴 것이다! 그러면 이 영화는 기획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활(弓)의 명수를 국민소화제 ‘부채표 활명수’랑 연결시키고, ‘한국양궁의 총설계자’ 현대자동차를 끌어들였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극장개봉이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OTT로 갔으면 더 효과가 있었을 것 같다. <부시맨>과 <쿨러닝>처럼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떤 스포츠라도 통하는 열정, 시련, 좌절, 극복, 그리고 영광과 감동이 있으니 말이다.
류승룡과 진선규, 고경표와 전석호, 시카-이바-왈부와 염혜란(?), 하다못해 조우진, 주현영까지 모든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깨알 웃음 포인트를 쏘아댄다. 과녁에 들어가면 금메달이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참가에 뜻이 있고, 출전에 의미가 있고, 존재가 목적인 선수들이니.
그런데 이게 웃을 영화인가? 생각하며 극장 문을 나설 때 <아바타>가 떠올랐다면 성공한 영화일 듯하다. 시카, 이바, 왈부는 세계문화중심국가, 콘텐츠강국 대한민국에서 ‘볼~레도르’를 알렸으니 말이다. 실 관람객에겐 활명수가 필요한 영화이다.
▶아마존활명수 ▶감독:김창주 ▶각본:배세영 ▶출연:류승룡,진선규,염혜란,고경표, 전석호, ▶제작사: 로드픽쳐스,CJ ENM MOVIE▶배급사:바른손이앤에이 ▶개봉:2024년10월30일/12세이상관람가/1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