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873] <범죄도시2>속편이란 무엇인가. 리들리 스콧이 무려 사반세기 만에 명작 <글래디에이터> 속편을 발표하며 영화팬들에게 기대와 우려를 함께 품게 했다. 기대는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장군 출신의 검투사 막시무스의 장렬한 한 생을 재현할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 있으리란 것이고, 우려는 그렇고 그런 흔한 속편들처럼 원작의 감상을 뭉개고 망칠 돈벌이에 급급한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속편이란 그와 같아서 전작의 명성에 기대는 만큼, 그것이 쌓은 공까지 망칠 수가 있는 법이다.
속편이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산업, 나아가 콘텐츠산업이란 것이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 줌의 관심이라도 더 끌어보려 TV방송에 나가고 유튜브 콘텐츠에 얼굴을 비추며 독자 얼마 되지 않는 지면인터뷰도 마다 않는 게 영화 마케팅이 아닌가.
원작 자체가 유명하여 따로 더 홍보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라면 굳이 속편을 제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산업적 측면에선 말이다. 무엇보다 한 편의 영화는 투자부터 제작을 거쳐 다양한 직역, 여러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태생부터 산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겠다.
▲ 범죄도시2 포스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잘 만들기 어려운 속편, 거듭 나오는 이유
원작이 성공했다면 그를 되살려 속편을 내는 것이 영화산업의 인지상정이다. 속편이 가능한 설정과 구성, 캐릭터까지 갖추었다면 금상첨화겠다. 기승전결의 공식이 뚜렷한 장르영화의 경우엔 아예 속편을 기대하고 그 판을 깔기도 하는데, 이따금 그 의도가 맞아 떨어질 땐 예상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과 함께-죄와 벌> 속편인 <신과 함께-인과 연>은 본편과 속편 모두 1000만 관객을 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머쥐며 한국영화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공조>에 이어 5년 만에 나온 <공조2: 인터내셔날>도 각기 700만 명 내외의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물론 모든 속편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원작이 있으니 캐릭터와 구성에서 손을 덜 수 있다는 기대가 독이 되기도 한다. 속편은 본편만큼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속설이 사실 그대로 드러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앞서 언급한 두 시리즈 모두 속편이 본편에 비해 관객이 덜 들었고, <조선명탐정> 등 꾸준히 속편이 나온 시리즈를 보더라도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인 <명량> 또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산: 용의 출현>과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한 실패작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관심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속편이 모조리 성공할 수 있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왕의 남자>와 <해운대> 같이 대성공을 거둔 영화가 속편을 내지 않았을 리 없다. 주인공 막시무스가 죽어도 <글래디에이터>를 되살리는 할리우드를 보면 태극기도 다시 휘날리고, 실미도도 어떻게든 다시 탈출하며, '왕의 남자 그 후'라거나 '경포대' 같은 작품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적었듯 속편을 만들기란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도 흥행시키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 범죄도시2 스틸컷ⓒ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오늘의 시리즈가 있게 한 작품
잘 만든 한국영화 속편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범죄도시>다. 한국 시리즈 최초 누적관객 3000만 명을 돌파한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역사상 속편제작의 모범 사례로 길이 남을 작품이다. 이례적으로 본편에 비해 속편 관객수가 크게 늘어 1000만 관객에 진입했다는 점에서도, 8편까지 제작이 논의되며 한국영화 사상 최장기 프로젝트로 기록될 예정이란 점에서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범죄도시2>는 오늘의 시리즈를 있게 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마동석과 윤계상, 진선규, 또 맛깔나는 조연들, 이를테면 최귀화, 장이수 같은 이들이 제 역할을 했던 1편이다. 그로부터 범죄를 일으킬 악역을 새로 짜고 코미디를 담당하는 조력자를 다시금 불러온 것이 2편이 되겠다. 윤계상이 연기한 장첸의 대체자로 낙점된 건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한 손석구였다.
장첸이 하얼빈에서 들어온 조선족 흉악범죄자였다면, 손석구가 맡은 강해상은 베트남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잔학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다. 인간성을 내팽개치고 수틀리면 찌르고 죽이는 그의 범행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 범죄도시2 스틸컷ⓒ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이 시대 관객이 원하는 만큼
전작이 중국동포가 밀집한 서울 구로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베트남과 서울을 오가며 진행되는 범죄물이다.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3편과 필리핀과 서울을 오가는 4편을 보자면 외부로부터의 침탈에 서울, 나아가 한국의 치안을 지켜내는 무지막지한 열혈형사 마석도의 활약이 시리즈의 중심임을 내다볼 수 있겠다.
모두 세 편의 속편 가운데서도 2편이 쌓아올린 성취가 적잖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벌이다 대부업체 회장의 아들까지 해한 강해상이다. 회장은 그를 죽이라고 살인청부업자들을 못해도 한 다스는 보내놓는데,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그에게 제압당하고 마는 것이다. 우연히 범죄인 인도를 받으러 베트남에 갔다가 이들이 벌인 난장을 목격한 마석도 일행이 강해상과 마주치고 일전을 펼치는 과정이 긴박하게 벌어진다.
화도 풀고 돈도 벌 겸 베트남에서 서울까지 진격하는 강해상이다. 그를 상대하려는 회장과 이들을 검거하려는 경찰이 한 데 엉켜 드잡이질을 벌인다. 승자는 언제나처럼 경찰, 역시나 마석도일 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답을 알고 가는 길일지라도 흥미진진할 수 있음을 납득케 한다. 전편에서 검증된 구성, 즉 마석도라는 어마어마한 캐릭터와 그를 위협하는 무지막지한 악당, 액션과 스릴, 또 유머의 적절한 결합이 딱 이 시대 관객이 바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것이다.
▲ 범죄도시2 스틸컷ⓒ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우리 안의 악은 외면한 채로
물론 같은 방식으로 거듭 속편을 찍는 것이 안이하다는 비판에도 이유는 있다. 마석도의 캐릭터는 새로움을 더할 무술에 맞춰 조금씩 변화할 뿐 근본적 강함은 그대로다. 첨단기술은 활용할 줄 모르지만 우직하고 정의롭게 활약하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관객이 일종의 안정감과 통쾌함을 느낀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현실 가운데, 특히 지극한 악당과 대면하여 통쾌함을 주는 공권력을 좀처럼 마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시리즈는 여전히 유효함을 발한다.
다만 아쉬운 건 시리즈가 거듭 우리 외부에서 타자화된 악당을 가져온다는 점에 있다. 교묘하고 치밀해진 우리 안의 악은 외면한 채로 하얼빈에서, 베트남에서, 일본과 필리핀에서까지 흉악범죄자를 들여와 한국의 치안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들 국가에서의 범죄행위가 실제 어느 정도로 이뤄지는지, 그 심각성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관객은 이들 국가의 치안이 열악하고 사회가 불안정한 후진국가일 것이란 잠재적 인식을 갖게 된다.
관객이 잘 아는 곳으로부터 실재하는 악을 반영하여 공들여 기획하는 대신, 거듭 극화되고 타자화된 악을 등장시키는 이 시리즈의 선택이 여러모로 아쉽다. 그 손쉬움이 한국 영화사상 최고라 해도 좋을 흥행성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더욱 그렇다. 이 모두가 <범죄도시2>가 이룬 성공이자 실패라 해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