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영화 편집본, 촬영감독이 털어놓은 진실

3377TV정보人气:897시간:2024-11-05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룩킹포>(*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 감독이 조연출과 함께 며칠 너끈히 철야를 치른 몰골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영화 제작의 마지막 단계, 편집이 곧 종료되기 직전이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환성을 지르며 감독은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간산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감회에 젖어 있다. 이제 '밝은 미래'만 남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거지꼴이 된 행색을 깨닫고 욕실에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세면과 면도를 하기 시작한다.

순간, 조연출의 비명이 들려온다. 급하게 튀어나온 그는 영화의 편집본이 든 외장하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한다. 컴퓨터에 미처 백업을 해두지 않아 그야말로 영화가 사라진 셈이다. 조연출의 증언에 의하면 영화의 촬영감독이 난입해 외장 하드디스크를 탈취한 뒤 도주했다고 한다. 급하게 뛰어나가지만, 짧은 골목 추격전 끝에 범인을 놓치고 만다. 모든 게 끝났다고 좌절한 감독은 자신을 위로하는 조연출의 성의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짜증을 부린다.

아무튼 촬영감독을 찾아내야 한다. 당연히 연락될 리 없다. 감독은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들을 찾아 단서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한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촬영감독의 후배인 사운드 감독은 다시는 감독과 얽히고 싶지 않다며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른 관계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어지간히 제작 과정에서 갈등이 심했던 듯하다. 촬영감독의 행방은 고사하고, 봉변을 당할 위기를 간신히 탈출한 감독은 이번엔 함께 작업했던 출연 배우들의 연이은 방문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는 감독을 불문곡직 (말 그대로) 공격하고 원망한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감독은 오직 자신을 빛내줄 영화가 숨어 있는 외장 하드를 찾는 목표에 집착한다. 마침내 촬영감독을 찾아내지만, 그에게서 들은 충격적 진실은 감독을 더욱 혼란으로 내몬다. 모든 비밀이 풀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다.

파격적인 전개로 변주

 '룩킹포' 스틸ⓒ 스튜디오팔삼구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독립 단편영화 좀 찾아서 본다는 관객들에겐 '또 영화 만드는 영화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다. 1년 내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수많은 영화제, 특히 영화학과 졸업영화제에서 돌 던지면 맞출 것 같은 흔한 소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졸업을 앞둔 영화학과 4학년이 논문 대신 제출해야 할 졸업작품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굳이 왜 관객이 봐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일반 관객은 잘 알지 못하는 '업계' 내부 사정이 세밀하게 묘사될 때 얻는 이해와 감흥이 남다르기도 하다. 무명 배우나 은막 뒤에 가려진 스태프의 애환,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속사정을 정교하게 담아낸 작품들은 지적 호기심과 함께 그저 상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고충에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즉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편의적으로 선보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진정성을 담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룩킹포>는 후자에 속하는 작업이라 단언할 수 있다. 연출과 각본에 대부분의 촬영까지 도맡은 김태희 감독은 오랜 시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고,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인상적인 감초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동안 교류한 네트워크와 영화 출연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독학한 연출을 기반해 2021년 선보인 단편 <걸어도 걸어도>는 전북독립영화에 야무진상(우수상) 수상과 청룡영화제 단편부문 후보에 선정되는 등 고른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 후속 작업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전제작 지원으로 완성된 첫 장편 <룩킹포>는 독립영화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 각자가 겪는 고충과 이가 어우러져 벌어지는 소동극을 기반으로 한다. 익숙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그 구성 방식은 무척이나 파격적인 도전으로 행해진다. 기묘한 조합이 전통적인 이야기 전개에 익숙한 관객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릴 테지만,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이들에겐 7년 간의 가뭄 끝 반가운 단비로 여겨질 법하다. 대체 어떤 형식을 지니길래 이런 상찬을 덧붙이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인디 문화예술가의 초상과 꿈

 '룩킹포' 스틸ⓒ 스튜디오팔삼구
<룩킹포>는 저예산 독립영화로선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온 '뮤지컬'에 도전한다. 뮤지컬 하위 장르 중에선 '주크박스 뮤지컬'에 속하는 접근법이다. 이 개념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맘마미아>처럼 잘 알려진 히트곡이나 기존에 발표된 POP 음악을 활용해 이야기 서사를 연결하는 형태의 비교적 새로운 장르다. 물론 상업적으로 안정된 성과와 익숙한 음악 활용을 통한 창작의 용이함으로 근래 인기를 얻고 있지만, 독립영화에서 이러한 도전은 무척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영화는 거기에 또다시 특별한 변형을 가한다. 흘러간 유행가나 대중적 인기곡을 선택하지 않고 정반대의 경향으로 치닫는다. 아는 이는 다 알지만,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지녔다고 보기엔 어려운 인디 밴드 '중식이'의 기존 발표곡을 중심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구성한 것이다. 김태희 감독이 중식이 밴드의 정중식 보컬과 동년배로 이전부터 교류해 왔기에 가능한 도전인 셈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통한 진행과 배우들이 각각 주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듯 중간에 삽입된 뮤지컬 제창 장면이 혼합되어 전체적인 서사를 형성해 나간다. 오랜 우애로 믿음을 형성한,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 된 배우들이 자기 분량 열연 외에도 스태프 일을 분담하며 수작업으로 빚어내는 장면의 연속이다. 감독이 자신의 막막한 심정을 노래할 때는 뮤직비디오가 끼어든 것 같은 독자적 전개와 함께 중식이 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인 '심해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심해어 괴인과 감독이 그야말로 생사를 건 격투를 벌인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캐릭터라 할, 과거 감독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무명 연기자들의 소망이 피력될 때는 '나는 반딧불'이가 흘러 나오고, 감독과 과거 악연이 있는 중년 배우가 가위를 휘두르며 또다시 격렬한 추격전을 감행하는 순간 '죽어버려라' 가사가 섬찟하게 깔린다. 중식이 밴드의 '촌스락(촌스러운 락)' 속 냉소적이지만 현실을 깊숙이 관통하는 가사의 울림이 극중 각각의 정처없는 표류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일상에 푹푹 꽂히는 기분이다.

중식이 밴드는 영화의 음악을 담당함은 물론, 감독과 제작진의 외장 하드를 둘러싼 각축 외곽에서 다른 한 축으로 일각을 책임지는 'Rock으로 우주정복' 밴드 결성과 공연 과정에 출연하기도 한다. 초중반에는 마치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불쑥 튀어나오곤 하던 이들은 영화의 막바지에 대미를 장식하는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데우스 마키나'까지 책임진다. 이런 활용법은 <룩킹포>의 이야기가 영화인에 머물지 않고, '돈이 안 되는' 문화예술인들의 공통된 처지와 고민, 그리고 열망으로 확장하려는 고민의 산물일 테다.

독립영화의 저력

 '룩킹포' 스틸ⓒ 스튜디오팔삼구
익숙한 서사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전개되는 <룩킹포>의 이야기는 관객을 정신 사납게 만들 테지만, 초반의 혼돈을 벗어나면 이제 흥미로운 모험의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감독과 조연출, PD, 촬영감독, 사운드 감독, 무명 조연배우들의 사연이 중식이 밴드의 절묘한 가사가 동반된 노래들로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한 번 공연 현장에서 리듬을 타면 파도에 몸을 맡긴 것처럼 조건반사로 흐르는 것처럼, 이 영화의 꽤 파격적인 구조에 익숙해지면 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지 호기심 천국 속에 종막까지 함께 달리는 건 순식간이다.

영화는 감독과 동료들이 오랜 세월 모든 게 여유와는 거리가 먼 독립영화 제작 현장에서 몸소 체험했던 기억을 한군데 전부 뭉쳐 재조립해 낸다. 각자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욕망과 마치 족쇄를 찬 것처럼 척박한 땅에 붙들린 처지가 차례로 소개되며 익살스럽지만, 현실을 은근히 진지하게 반영한다. 언뜻 비현실/초현실적 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기다가도 그런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성찰적 면모가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극 중 너무나 거창한 밴드 이름과 달리 미약하고 구차스러운 출발점 역시 그와 조응하며 21세기 한국 청년세대가 처한 단면의 일부를 시각화한다.

이 영화가 선보이는 부조화스러운 요소들의 조화는 불균질하기에 더 흥미로운 여지를 남긴다. '쌈마이'다운 배경과 소품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도, <룩킹포>의 제작예산이 3천만 원도 안 된다는 정보를 접하면 놀랄 이가 제법 될 테다. 열악한 조건이 만능 방패가 될 순 없겠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창의와 우애를 다해 장편영화를 완성함은 물론, 어느새 틀에 박힌 듯 익숙한 문법으로 일관하는 독립영화 양상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흡족한 낯설게 다가선다는 건 충분히 평가해 마땅한 사례다.

결국 독립영화의 원천적인 힘은 상상력과 도전을 통한 '새로운 영화'의 전망을 제시함에 있다. 종종 그 정도를 망각하고, 독립영화가 마땅히 견지할 상업영화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모색을 현실 조건을 핑계로 외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현 상황에서 <룩킹포>가 선사하는 찬란한 혼돈은 오히려 반가운 낯선 만남의 순간이 될 저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독립영화인의 진심을 듣고 싶다면, 인디 음악과 독립영화가 뮤지컬을 통해 교류하고 혼합되는 풍경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극장에서 <룩킹포>를 찾으라.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룩킹포' 포스터ⓒ 스튜디오팔삼구
<작품정보>

룩킹포 Looking for
2023 한국 주크박스 뮤지컬
2024.11.06. 개봉 104분 12세 관람가
감독/각본 김태희
작사/작곡 정중식
음악감독 우주비
출연 장결호(감독 역), 정하담(조연출 역), 김준배(피디 역),
정은경(중년 여배우 역), 남가현(사운드감독 역), 정운(촬영감독 역),
최은경(배우 정은영 역), 이진성(배우 이유성 역),
정중식(Rock으로 우주정복 보컬 역), 우주비(Rock으로 우주정복 피디 역),
샘 사무엘(샘 역), 우자(우자 역), 한우(한우 역)
특별출연 장해금, 장선
제작/배급 스튜디오팔삼구
배급슈퍼바이져 박석영

2023 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장편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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