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계, 우주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에 대하여 이어받는 방법

3377TV정보人气:324시간:2024-05-22

1977년, 20세기 폭스사에서는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었고, 로맨스, 섹스, 복수, 전쟁과 같은 재미있고 선정적인 소재들이 버무려진 대작 멜로드라마였다. 흥행에 자신이 있었던 회사에서는 신인감독이 만든 다소 수상쩍은 SF영화를 이 영화와 묶어 패키지로 팔았다. 대작 영화는 시드니 셸던 원작, 찰스 재럿 감독의 <깊은 밤 깊은 곳에>. 수상쩍은 SF영화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였다. 우리나라에서 <깊은 밤 깊은 곳에>는 흥행이 꽤 됐다. 적어도 <스타워즈>보다는 훨씬 잘나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망했고 거의 완벽하게 잊혔다. 지금 이 영화는 <스타워즈>가 어떻게 할리우드를 바꾸었는지, 그 변화가 어떤 희생자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만 기억된다. <스타워즈> 대신 <깊은 밤 깊은 곳에>를 선택한 한국 관객들은 그 신호를 조금 늦게 읽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그 신호는 계속 뒤로 밀린다. 일단 <스타워즈>의 뒤를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이 개봉되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도 개봉이 한참 뒤로 밀렸으며 흥행도 별로였다. 이 세계가 제대로 소개되기 위해서는 비디오 출시와 명절 더빙판 방영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스타워즈> 세계를 이루는 다른 재료들, 그러니까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만화책은 그 뒤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80년대 블록버스터물들이 인기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스타워즈>처럼 연결된 복수의 영화들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분리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드는 작업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스타워즈>의 우주가 지닌 장점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이런 작업이 <스타워즈> 이전엔 없었다고 하지는 않겠다. 일단 <스타워즈>부터가 버스터 크라베가 주연했던 <플래시 고든>이나 <버크 로저스> 같은 30년대 연재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TV는 오래전부터 <스타 트렉>과 <닥터 후> 같은 작품들에 자기만의 유니버스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문학 세계엔 더욱 많았고. 그리고 여러분이 시각효과를 잔뜩 쓴 슈퍼히어로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이 마블 때부터 나왔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프리츠 랑의 <지그프리트> 2부작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예의일 것 같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영화의 세계에서 <스타워즈>의 세계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고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가 당연시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가 일관된 유니버스를 만드는 것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보라.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영화들 중 전편과 제대로 내용이 이어지는 건 이번에 나온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뿐이다.

지금 <스타워즈>의 우주는 수많은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들 중 가장 소란스러운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겠지만 <스타워즈>도 만만치 않다. 극장용 영화의 수는 마블보다 밀리겠지만 TV시리즈의 에피소드 수를 포함한다면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도 있다. 양쪽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대중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팬들이 점점 유해한 방향으로 썩어가고 있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수 있겠다.

최근 영화 <더 마블스>를 보라.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을 이해하려면 몇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가. 여기 나오는 외계인들의 사연을 이해하려면 또 몇편의 영화를 봐야 하나. 과연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 중 몇명이나 이 설정을 다 이해하고 보았을까? 그렇다고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을 다 챙겨봐야 하나? 도대체 왜?

비슷한 이야기는 최근에 나오는 <스타워즈> 드라마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소카>는 <오비완 케노비>와 달리 영화의 속편도 아니다. 여기서 당연한 듯 나오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애니메이션 시리즈 <클론전쟁>과 <저항군>을 모두 챙겨야 한다. 몰라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이전 시리즈 시청자들이 이번 시리즈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친근감은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타워즈> 세계의 역사와 지리는 점점 복잡해져갔다. ‘하얀 로봇처럼 생긴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 정도의 이해만 갖고 있어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던 순진한 시대는 갔다. 여전히 콘텐츠들이 쌓이고 있는 터라 이 세계의 복잡성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과 관객들 모두 그 안에 갇혀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의 우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스타워즈>의 유니버스가 마블 것보다 훨씬 그럴싸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마블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슈퍼히어로들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이 우주를 이루는 외계인, 고대의 신, 평행우주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이 슈퍼히어로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연이 이 세계는 억지스럽고 인위적이다. 이것들이 독립된 작품들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이후의 작품들에 계속 영향을 준다면 사정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스타워즈>의 세계는 융통성이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

자기만의 이상한 역사와 지리에 갇혀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달리 <스타워즈>의 세계는 훨씬 융통성이 있다. 얼마 전에 시즌2가 나온 <비전스>를 보자. 전혀 연관성이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독립적으로 낸 <스타워즈> 단편들인데, 대부분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행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설정상 <스타워즈>는 하나의 은하계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마음껏 새로운 세상과 인물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 제국이나 제다이와 같은 기존의 설정 몇개만 넣어준다면 시청자들은 새로운 지리와 역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엔 또 다른 장점이 있으니 마블 영화들과 달리 <스타워즈>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다들 제다이나 시스 같은 것으로 수렴되지만 언제든 그 틀을 벗어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자유도가 존재한다.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린 작품이 바로 <안도르>다. 이 작품은 제다이로 대표되는 신비주의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정통파 SF처럼 보이고, 안도르 역시 포스와 상관없는 평범한 사람이며 그와 엮이는 주변 사람들도 특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도르>는 여전히 빼어난 <스타워즈>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짜는 것이 허용되는 우주인 것이다.

여기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써먹을 수 있는 몇백 세기의 역사가 존재하는데도 대부분 <스타워즈> 영화나 드라마는 공간적으로는 코러산트와 아우터 림 언저리의 몇몇 행성들에, 시간적으로는 야빈 전투 앞뒤의 짧은 시간 사이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불안해한다. 이는 <애콜라이트>의 트레일러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설명한다. 작정하고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러려면 자칭 팬이라는 사람들의 저항을 통과해야 한다. 이 상황이 과연 변할 구석이 있는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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