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한쪽은 젊은 남녀 지수(권잎새)와 우주(반시온)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6년의 연애 이후 헤어진 상황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우주가 지수의 집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실수로 친구 영배(안성민)를 해쳤으니 함께 시신을 처리하자는 생뚱맞은 부탁이다. 이후 이어지는 지수의 반응과 이야기 전개는 더 생뚱맞다. 사망한 줄 알았던 영배가 갑자기 살아나질 않나, 우주의 엄마 신애(윤유선)까지 이 사태에 끼어든다. 점입가경으로 빠져드는 이야기 위에서 또한 독특한 것은 살인사건을 대하는 영화의 감정적 태도다. 인물들은 일반적 감정이 결여한 부조리극의 인간들처럼 인간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고 이에 대응한다. 이를테면 지수가 죽은 듯한 신애를 보고 “이제 어머니가 해주시는 꽃게탕을 못 먹겠다”라고 독백하는 방식이다. 서사와 감정의 농도가 일반적이지 않을뿐더러 촬영 형식의 독특함도 눈에 띈다. 일련의 살인사건은 지수 집의 작은 거실과 화장실에서 이뤄지는데, 카메라는 결정적 순간에 360도를 회전하며 공간을 조망하는 등 여러 형식적 시도를 보여준다.
지수와 우주의 이야기가 아무런 감정적 기반 없이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면, 다른 한편에선 오로지 감정만으로 이뤄진 듯한 기완(박종환)과 인선(양조아)의 이야기가 재생된다. <미지수>는 기완이 꿈속에서 우주를 하염없이 부유하는 SF적 이미지로 시작한다. 기완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 치킨 가게를 운영 중인 부부는 모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듯 보이고 기완은 일상에 발 붙이지 못한 채 붕 떠 있다. 기완은 전화 통화를 하며 배달에 임하려는 배달 기사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치킨 주문을 받지도 않는다. 인선은 그런 기완을 애처롭게 대하더니 일순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며 분개하기도 한다. 이들이 실제로 어떤 사건을 겪었는진 한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기완과 인선이 그저 아파하고 슬퍼하며 침체하는 감정의 후속적 파고만이 스크린에 감돈다.
여기까지 <미지수>는 각 이야기에서 감정과 사건이란 영화의 구성 요소를 의도적으로 소거하며 이뤄지는 한편의 실험극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간결한 하나의 설정을 후반부에 드러내면서 두개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연결한다. 그렇게 각 이야기가 지니던 감정과 사건의 빈틈을 메꾸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상실’이란 주제 아래 묶이는 세계에선 온 감정과 사건이 뒤죽박죽으로 엮이는 듯 이어지고, 영화의 플롯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자유로이 유영하기에 이른다. 완전히 별개인 줄 알았던 두 이야기의 형상이 서로를 침범하고 그 와중에 나타나는 이야기와 형식의 미묘한 뒤틀림들이 신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왜 초중반의 <미지수>가 부조리극에 가까운 톤 앤드 매너를 택했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신예 배우 권잎새, 반시온의 돌출적인 힘과 베테랑 배우 박종환, 양조아, 윤유선의 어긋난 안정성이 섞이며 일어나는 재미 역시 인상적이다. <가시꽃>(2012)을 시작으로 <봄날>(2021) 등 네편의 독립 장편영화를 발표하며 주목받아온 이돈구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다.
CLOSE-UP
지수와 우주가 화장실에 있는 영배의 시신을 처리하려는 도중 거실 TV에선 지수, 우주, 영배가 함께 술 마시며 놀던 과거의 영상이 재생된다. 영화 속 영화라든지 다소 형식적인 장치로 보였던 이 TV 속의 영상이 후반부에선 온전히 감정적인 추억으로 여겨질 때의 감흥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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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감독 오세현, 2021
누군가와 이별하고, 누군가를 잃은 기억을 탐험하는 이야기란 점에서 <미지수>는 <우수>와 겹쳐 보인다. <우수>가 누군가의 죽음을 대면하기 위해 진행되는 직선의 로드무비였다면, <미지수>는 상실의 언저리에서 돌고 도는 이들의 떠돎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