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 감독 “‘더 에이트 쇼’ 쾌감 無라고? 현실에선 흙수저 ‘사이다’ 존재하지 않아” [SS인터뷰]

3377TV정보人气:335시간:2024-05-24

한재림 감독. 사진 | 넷플릭스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한재림 감독의 작품은 장르를 정의하기 어렵다. ‘연애의 목적’(2005)은 멜로를 비틀었고, ‘우아한 세계’(2007)는 누아르의 틀에서 옆 길로 샜다. ‘관상’(2013)은 사극의 전형에서 탈피한 작품이며, ‘비상선언’(2022)도 기존 재난물과 다르다. ‘더 킹’(2017)을 제외하곤 늘 기존 장르를 비틀어왔다.

한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는 서바이벌을 비틀었다. 서바이벌이라 하면 영웅적인 주인공이 악인을 하나씩 처치해나가야 하는데, ‘더 에이트 쇼’는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누군가 쉽게 죽지도 않는다. 엔딩이 통쾌하지도 않다. 희망적인 듯 찝찝한 뒷맛이 감돌며 끝났다. 기존 장르를 피하면서 벌어진 틈새는 씁쓸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블랙코미디가 채운다.

‘더 에이트 쇼’는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원시체제로 돌아간 공간에서 극한의 감정을 보이는 군상을 다뤘다. 계급과 본능이 주제였던 원작을 기반으로 “영상 매체의 자극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남겼다. 재미보단 의미 있는 작품을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재미에만 몰두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서 창작자의 고민이 반영됐다.

‘더 에이트 쇼’ 스틸컷. 사진 | 넷플릭스
한재림 감독은 22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대본을 썼다. ‘어떻게 재미를 줘야 되지?’라고 7층(박정민 분)이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장면이 꼭 나 같았다. 작가들과 공감대가 있었다. 예전에는 재미와 의미, 작가의 개성을 지켜봤다면 이제는 ‘재미만 있으면 다 된다’라는 생각이 극에 달한 것 같다. 어떤 장면에서 관객이 쾌감을 느낄지 아는데, ‘그게 맞나?’라고 질문하게 됐다. 그 질문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더 에이트 쇼’는 단순히 영상 매체 자극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원작에 담긴 계급과 본능도 다룬다. 인물들의 삶은 금수저와 흙수저를 표현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과 전복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폭력과 선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쾌감과 자극보다는 불편함을 남긴다.

“제가 연출하면서 노린 지점은 쾌감이 없는 거예요. 약자가 강자를 누르거나, 선이 악을 이겨낼 때 관객은 쾌감을 느껴요. ‘사이다’라고 하는 포인트가 그거죠. 하지만 현실은 사이다가 아니잖아요. 이 작품이 관심을 더 받으려면 6층(박해준 분)과 8층(천우희 분)의 베드신이 들어가는 게 더 좋았죠. 원작도 선정적인 장면이 많거든요. 하지만 제 의도는 쾌감의 반대편에 있어요.”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인들은 처벌을 받곤 한다. 죄질이 악하면 악할수록 처벌의 정도가 심해진다. ‘더 에이트 쇼’에서 최악의 악행은 8층이 저지른다. 순수하고 어린 아이 같은 태도를 가진 8층은 주위 사람들을 고문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 내에서 이렇다할 처벌을 받지 않는다. 관객은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한 대목이에요. 혐오를 쌓은 다음에 부수면 통쾌하게 느껴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층민의 보복은 현실에서 잘 벌어지지 않잖아요. 허상이죠. ‘사이다’를 주면 고민을 안 해요. 그냥 살지. 진실에 접근하면서 생각을 해보자고 제안한 거예요.”

한재림 감독. 사진 | 넷플릭스
작품의 강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대부분 인생 연기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이열음, 박해준, 문정희, 이주영, 배성우 등 총 8명의 배우는 익숙한 듯 신선한 얼굴로 작품에 임한다. 개인마다 캐릭터가 딱 달라붙으면서도 앙상블도 훌륭하다.

“감독으로선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는 칭찬이 제일 좋아요. 다들 하나 같이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했어요. 편집할 때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디테일이 다 살아있어요.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개인적으론 5층(문정희 분)이 가장 애착이 가요. 역할이 답답하잖아요. 연기가 이상하면 작위적인데, 정말 좋은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살렸어요.”

‘더 에이트 쇼’ 공개를 앞두고 주인공 류준열의 열애, 결별, 배성우의 음주운전 전력 등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작품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불편한 포인트가 많았다. 지난 10일 열린 ‘더 에이트 쇼’ 제작발표회 현장도 해명의 장이 됐다. 데뷔 19년 차 한재림 감독은 당일 극도의 간장된 얼굴로 자리에 임했었다.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에요. 그날은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류준열은 다른 작품 집필하느라 내용도 잘 몰랐어요. 이 작품에 끝까지 성실했던 친구예요. 만약에 죄를 지은 거라면 신경썼겠지만, 사생활 문제이니까. 배성우는 시나리오를 다 쓰고 고민 했을 때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은 관계자들도 납득을 했고요. 제가 복귀를 시키고 말고 하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죠.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체할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더 에이트 쇼’ 스틸컷. 사진 | 넷플릭스
한감독은 ‘더 에이트 쇼’에 이어 인기 웹툰 ‘현혹’을 시리즈로 준비 중이다. 현재 4회를 집필 중이다. 최근 류준열과 한소희 캐스팅이 무산되면서, 판을 새롭게 짜고 있다.

“저는 블랙코미디를 좋아해요. 장르를 뒤집는 것도 좋아하고요. 제 성향이 또 반영되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재미만 찾는 건 저와 안 맞는 것 같아요. 충분히 재미를 주면서 작가가 세상을 보면서 가진 문제의식을 담을 것 같아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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