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교체는 신의 한 수, 할리우드 새 역사를 쓰다

3377TV정보人气:175시간:2024-05-22

[리뷰]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공식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조지 밀러 감독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개봉했다. 2015년 개봉해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연 2015년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후속작 겸 프리퀄이다. <퀸스 갬빗>, <엠마> 등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안야 테일러조이가 전작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분한 캐릭터 '퓨리오사'를 연기하는 바통을 이어받았다.

감독을 비롯한 전작의 제작진이 거의 그대로 참여했다는 점과 흥행 배우의 조합은 이미 관객들의 기대를 끌어모으기에 충분했지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그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작이 이러한 업적을 이룬 이유를 간단하게 분석해 보자.
 
배우 교체라는 '신의 한 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가장 큰 특장점이자 리스크는 바로 배우 교체였다. 전작에서 잃어버린 집 '어머니들의 땅'을 찾아 나선 퓨리오사라는 캐릭터는 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열연으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해당 인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게 된 안야 테일러조이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는 어린 소녀이던 퓨리오사가 바이커들을 이끄는 약탈자 무리의 리더 '디멘투스'에게 납치당하면서 시작된다. 이때의 퓨리오사는 그야말로 아동에 가까운 나이라, 안야 테일러조이 대신 아역 배우 알릴라 브라운이 연기한다. 그러니 본작에서의 두 배우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론을 합치면 도합 세 명의 배우가 퓨리오사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영화의 중반부, 퓨리오사가 청소년기에 접어들고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 안야 테일러조이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긴 상영시간을 감안해도 비교적 늦은 등장이지만, 단독 주인공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명연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디멘투스, 그리고 그와 대적하는 적의 적 '임모탄 조' 사이를 오가면서도 자신만의 복수를 꿈꾸는 퓨리오사의 모습은 안야 테일러조이의 명연기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안야 테일러조이의 퓨리오사가 거의 곧바로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로 이어지는 모습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 두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본작의 엔딩과 전작의 시작이 곧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해당 인물이 다른 배우로 '변신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에는 응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매드 맥스> 시리즈 자체가 구전설화의 형태를 띠는 이야기, 즉 '모닥불 앞에서 나누는 이야기(fireplace story)'라는 점이 그 이유다. 본작을 비롯한 매드 맥스 시리즈의 모든 스토리는 일어났을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하나의 전설이다. 그러한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면 두 배우의 신체적 차이와 작중 시간대의 불일치는 그다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샤를리즈 테론의 이야기도, 안야 테일러조이의 이야기도 아닌 '퓨리오사의 이야기'니까.
 
사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외에도 여러 배우가 한 캐릭터를 연기한 일은 종종 있어 왔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영화는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배우를 교체해 왔고, 영국의 국민 드라마 <닥터 후>는 주인공 역의 배우를 일정 주기로 교체해 현재는 6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열다섯 명의 배우가 한 캐릭터를 공유하고 있다. 캐릭터가 특정 배우의 전유물로 남으면 한 영화가 잊혀 감에 따라 그 캐릭터도 함께 잊히지만, 배우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면 세대를 넘나드는 '장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 본작의 리캐스팅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지금껏 여성 인물들이 다양한 배우를 통해 계승된 사례는 많지 않다. '모든 세대에게는 각자의 <작은 아씨들>이 필요하다'라는 신조 아래 여러 번 영화화된 <작은 아씨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실사화로 탈바꿈하면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디즈니 공주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이들은 시대에 따라 여성의 역할을 가정과 로맨스에 국한시킨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리캐스팅을 통해 퓨리오사라는 인물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재창조했고,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르 영화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본작을 시작으로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아이콘 캐릭터'가 거듭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 8번째로 영화화된 2019년작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거장의 여성 서사, 더 많은 이야기의 초석 되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리캐스팅을 통해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작품 외적의 상황을 감안해 보면 약간의 아쉬움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서사시 구조를 가진다. 납치된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단순한 플롯이 2시간 30분에 달하는 장대한 러닝타임의 액션 활극으로 변한 이유다. 러닝타임이 길어지면 관객들은 몇몇 디테일을 놓치거나 변형해서 기억하기 마련이고, 결국 상영 이후에는 각자 다른 영화를 회상하게 된다. 긴 영화 자체가 관객들의 입을 통해 번지는 하나의 구전설화가 되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 역시 이러한 '영화의 신화화'를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신화화'는 누구에게 허용되는가?
 
긴 러닝타임은 할리우드에서 하나의 거대한 리스크다. 관객들의 집중력과 시간을 많이 요구할수록 영화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값비싼 티켓을 사고 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방문한 관객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대비했을 때 손색이 없는, 훌륭한 이야기를 원한다.

이를 아는 영화 제작자들은 비교적 영화 제작 경험이 적은 신인·여성 감독에게는 본인의 장대한 비전을 구축할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다. 패티 젠킨스 감독의 <원더우먼>시리즈는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2편의 미진한 성적 이후 곧바로 후속작의 제작이 취소되었고, SJ 클락슨 감독의 <마담 웹>은 지나치게 많은 러닝타임이 편집되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욱여넣은 괴작으로 변모한 바 있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월트디즈니코리아
 
 
그렇기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곧바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제작에 돌입한 조지 밀러 감독의 선택이 다행스러운 것이다. 조지 밀러라는 백인 남성 거장 감독이 본작의 제작을 결심해야만 스튜디오 역시 감독의 비전에 간섭하는 행위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선뜻 투자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은 아쉬울 만하다.

<아담스 패밀리>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는 마찬가지로 백인 남성인 팀 버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나서야 제작이 확정되었다. 지금까지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류(mainstream)에 올리기까지는 보수적인 권위에 기대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웬즈데이>의 두 번째 시즌에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주연 배우 제나 오르테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할리우드의 관성에 의존해서라도 커진 여성의 이야기들에 여성 제작자들의 자리까지 보장되기를 바라 본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비평적 호응에 힘입어 흥행에까지 성공한다면, 여성 인물을 주연으로 하는 거대한 장르 영화와 할리우드 투자자들 사이의 심리적 장벽이 한 번 더 무너지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거장의 여성서사를 초석 삼아 여성 감독·여성 주연의 스토리들이 더 큰 규모로 관객들 곁을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할리우드의 보수적인 관성을 깨기에 영화 한 편의 성공은 턱없이 미약할지도 모르지만, <매드 맥스>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항상 부정하는 '희망'을 가져 보고자 한다.
 
장대하게 반복했고, 위대하게 성공했다

지금까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리캐스팅이 성공적이었던 이유, 그리고 본작이 할리우드 여성서사 대작들을 가로막는 문을 여는 장치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작에서 퓨리오사는 40일간의 황무지 전쟁 끝에 디멘투스를 붙잡는 데 성공한다.
디멘투스는 죽기 전, 퓨리오사에게 '이걸 네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된 그의 대사에는 사실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epic'이란 단어는 그저 '멋진' 정도로 번역되는 수식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승되어 온 문학 형태인 '서사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다소 투박하게 직역하면, 디멘투스의 물음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Do you have it in you to make it epic? (넌 이걸 서사시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을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러한 디멘투스의 물음에, 여성의 복수극도 거대한 자본의 힘을 빌려 서사시처럼 전승될 가치가 있다고 확답해 주는 듯한 영화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를 우러러보게 된 관객에게는, 혹은 그와 상관없이 모래와 열기로 가득 찬 여성의 오디세이아를 큰 화면에서 목격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전혀 아깝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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