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869] <댓글부대>오늘날 하이패스라 불리는 '고속도로 자동통행료징수시스템(ETCS)'이 한국에 처음 선 보인 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무선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톨게이트마다 차량이 멈추고 서 정산하는 과정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가 징수시스템 사업자를 선정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2004년 삼성SDS와 포스데이타가 참여한 '능동형 RF 방식 사업자' 선정 입찰이 실시된다. 이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삼성의 '하이패스 방해전파 사건'이다.
당시 포스데이타 시험차량이 톨게이트를 돌입할 때마다 차량 인식률이 평소(99% 이상)보다 크게 떨어지는 60% 수준으로 나오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직원들은 시험장소인 도로 주변을 맴도는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해당 차량의 번호 등을 입수하게 된다. 이후 수사과정에서 해당 차량이 삼성SDS 직원 명의로 빌린 렌트카라는 게 밝혀졌고, 직원들은 방해전파를 쏴 상대 시험을 방해함으로써 업무방해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 댓글부대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믿기 힘든 실화, 소설을 거쳐 영화로
그러나 사건은 참담하게 흘러갔다. 언론은 이 놀랄만한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고, 재판에서 포스데이타 측이 승소했음에도 사업권은 삼성SDS 측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2007년 삼성SDS 중심의 컨소시엄은 수도권과 충청, 경북을, 포스데이타 측은 강원과 호남, 경남 일대 사업을 가져갔다. 부정의 정황이 입증됐음에도 향후 사업운영에 별 차질을 빚지 않은 건 물론, 경기와 충청 등 알짜배기를 챙겨간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쓰지 않은 이가 없다 해도 좋을 하이패스 사업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가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영화로 만들어졌다. 해외였다면 일찌감치 판권을 사 'based on true story'가 붙을 만한 소재임에도, 기업의 실명을 감춘 채로 '만전'이란 가상의 업체로 이야기를 꾸민 점이 민망하게 다가오지만 말이다.
<댓글부대>는 실화 바탕 작품으로 제 문학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장강명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2024년 작 작품이다. 화제성 있는 유튜브 채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으나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란 평가가 잇따랐다. 특히 언론의 타락, 가짜뉴스의 범람, 정부와 기업 차원의 여론조작 시도가 수차례 논란이 돼 왔던 한국의 현실에서 이를 지적하는 작품이란 점이 영화를 달리 보게 했다.
감독은 2015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주목받은 안국진이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라 해도 좋을 손석구가 주연을 맡았고, 김성철, 김동휘, 홍경 등 아직 널리 알려지진 못했으나 가능성이 충만한 젊은 배우들을 선발해 출연토록 했다. 한국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가운데 흥행한 사례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한국 작품의 영화화를 선택한 점도 인상적이다.
▲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오보로 직장 잃은 기자의 선택
이야기는 한국 PC통신의 태동부터 시작한다. 온라인을 통해 공론장이 형성되고 기업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는 여론이 집결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뤄진다. 나이와 성별과 계급을 떠나 이성과 이성이 교류하는 장이 온라인 가운데 열린다. 그로부터 초라하지만 최초의 촛불집회가 열리고 정치와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시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흘러 이번엔 누구나 손아귀에 전화기 하나쯤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된다.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신문기자 임상진(손석구 분)이 어느 PC방에서 글을 올리는 모습을 비추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그는 굴지의 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하다 오보를 쓰고 정직된 상태다.
그 오보란 것이 앞에 적은 삼성의 하이패스 방해전파 사건과 꼭 닮아 있다. 중소기업 업체 사장이 상진에게 직접 제보한 내용으로, 누군가 입찰과정에서 몰래 방해전파를 쏴 입찰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는 방해전파를 쏜 이들이 만전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의심한다. 그게 아니라면 평소엔 잘만 작동하던 기술이 딱 그 순간에만 멈출 리 없다는 것이다. 방해전파를 쏜 이들 뿐 아니라 입찰을 주도한 이들조차 너무나 상대에게 유리한 태도를 보였는데, 모든 상황이 만전을 위한 것이나 다를 바 없이 돌아갔다.
상진은 그날 있었던 일을 캐나가고 상사들을 설득한다. 막대한 광고를 다루는 만전이란 기업을 저격하는 게 언론사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실이라면 다루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는 윗선을 설득해 보도를 허락받고, 기사를 작성한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 기사는 오보로 판명된다.
▲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기자 출신 작가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
정직된 상진에게 의문의 제보가 들어오며 이야기는 속력을 낸다. 상진의 기사가 오보가 아니며,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팀을 꾸려 활동하는 저들이 기사를 오보로 만들었단 이야기다. 일명 '팀알렙'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조작을 주도해왔다는 제보자는 다른 두 동료와 함께 수행한 온갖 일들을 상진 앞에 털어놓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특종이 아닌가. 상진의 눈에 불이 번쩍 들어온다.
<댓글부대>는 스릴러의 형식으로 정직 상태인 상진이 사건의 진상을 파고드는 모습을 담아낸다. 열혈기자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전력을 다할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상진이다. 뒤가 없는 상황에 내몰린 그가 저를 둘러싼 믿기 힘든 정황들을 헤치며 한 발 한 발 진실이 다가선다. 관객은 상진의 뒤에 서서 함께 진실을 향해 전진해나가는데 상당한 실화와 꼭 그만큼의 상상을 바탕으로 짜인 이야기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한국사회의 이면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기자가 돈을 받고 기사를 쓰고, 기사를 막는 대가로 기업에게 자리를 받고, 그렇게 자리를 옮겨가는 이야기, 좀처럼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사건으로 확인된 지 오래다. 또 수많은 개인정보를 도용해 계정을 파고 그로써 여론을 움직여 기업과 정치집단이 이익을 취한 사례 또한 우리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부정한 입찰이 이뤄지고 분노한 기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 또한 없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 같은 부조리에 굴지의 기업이 개입한다는 설정 또한 충분히 뻗어가볼 수 있는 상상이라 하겠다.
▲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작과 날조가 횡행하는 시대의 자화상
기자로서 이 같은 기사를 써내지 못한 장강명이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가 되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소설을, 상상보다 더 상상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갔다. 언론이 이 같이 충격적 사실을 오늘의 독자 앞에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강명의 작업은 그대로 얼마간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댓글부대>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멈추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조작과 날조, 반칙이 횡행하고, 이를 고발하고 지적해야 할 이들이 매수되는 사회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가 없다. 크고 작은 반칙과 조작, 날조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수시로 마주한다. 어제의 사건이 그 배우들만 바꾼 채 오늘의 무대 위에 재현된다. 입장료를 낸 관객들만 손해를 보는 게임, <댓글부대>가 진정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탁월한 원작이며 연출이 아닐지라도, 한국 사회에 유효한 이야기를 현재적 방식으로 다루는 것, <댓글부대>가 가진 미덕이 바로 이것이다.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OTT서비스를 통해 공급을 시작한 이 영화를 다시금 이야기하는 이유, 그것이 바로 이 현재성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